코리아엔터

코리아엔터

이성미·송은이, 죽음도 맡긴 '가족 이상' 우정

 코미디계의 대선배 이성미가 후배 송은이에게 자신의 사후 장례 절차를 전적으로 위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를 모으고 있다. 최근 공개된 웹 예능 콘텐츠에서 이성미는 송은이를 향한 남다른 애정을 드러내며, 수많은 후배 중에서도 그를 자신의 장례 위원장으로 낙점한 이유를 밝혔다. 이는 단순한 농담을 넘어 오랜 시간 신앙과 삶의 궤적을 공유하며 쌓아온 두 사람만의 견고한 유대감이 바탕이 된 결정으로 풀이된다.

 

두 사람의 대화는 종교적 신념과 인생의 가치관에 대한 깊이 있는 고백으로 이어졌다. 평소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를 중시하는 송은이는 처음 접한 복음이 논리보다 앞서 믿어졌던 신비로운 경험을 털어놓았다. 이에 이성미는 송은이를 연예인 공동체의 실질적인 리더로 치켜세우며, 신앙 안에서 올바른 길을 가기 위해 애쓰는 후배의 모습에 깊은 신뢰를 보냈다. 선배의 그늘에 숨어있기보다 묵묵히 제 역할을 해내는 송은이의 성실함이 이성미의 마음을 움직인 셈이다.

 


장례 위원장 지목과 관련한 유쾌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공개되어 웃음을 자아냈다. 송은이는 이성미가 자신과 상의도 없이 외부에서 먼저 장례 위원장으로 지목하는 바람에, 나중에 기사를 보고서야 자신의 직함을 알게 되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당황스러울 법한 상황임에도 송은이는 자신을 믿고 중책을 맡겨준 선배의 진심에 오히려 감사를 표했다. 수많은 후배 중 자신을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인생의 큰 훈장과도 같다는 고백이었다.

 

이성미가 이토록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송은이에게 의탁하려는 배경에는 그녀의 치열했던 투병사도 자리하고 있다. 지난 2013년 유방암 진단을 받았던 이성미는 고통스러운 항암 치료를 견뎌내고 2018년 완치 판정을 받은 바 있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경험이 있는 만큼, 남겨진 절차를 누구보다 믿음직하게 수행해 줄 사람으로 송은이를 점찍은 것이다. 삶과 죽음을 관통하는 두 사람의 대화는 시청자들에게 인생의 진정한 인연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게 했다.

 


온라인상에서 누리꾼들은 두 사람의 관계를 '연예계의 귀감'이라 칭하며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장례를 맡길 수 있을 정도의 신뢰는 부모 자식 간에도 쉽지 않은 일이라며, 두 사람의 아름다운 동행을 응원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특히 송은이의 의연한 대처와 이성미의 따뜻한 눈빛에서 느껴지는 진정성이 인위적인 연출이 아닌 실제 삶에서 우러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성미와 송은이의 사례는 각박한 연예계에서 선후배가 서로의 인생을 어떻게 지탱해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남게 됐다. 이성미는 송은이가 자신의 뒤를 이어 후배들을 잘 이끌어줄 것이라는 확신을 보였고, 송은이는 그 믿음에 보답하듯 선배의 마지막 길까지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오랜 세월을 함께하며 완성된 이들의 케미스트리는 단순한 우정을 넘어선 가족 이상의 가치를 증명하며 많은 이들의 가슴에 묵직한 여운을 남겼다.

 

남원 옛길 탐방, 춘향의 눈물과 오수개 충절을 걷다

던 주요 통로로, 소설 춘향전 속 이몽룡과 춘향이 이별의 눈물을 쏟았던 ‘오리정’이 그 출발점이다. 고을 경계에서 손님을 배웅하던 오리정 인근에는 춘향의 슬픔이 서린 ‘눈물방죽’과, 떠나는 임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 버선발로 뛰어갔다는 ‘버선밭’ 지명이 전해진다. 비록 도로 확장과 직선화 공사로 인해 옛 풍경은 많이 변했지만, 길가에 홀로 선 표지석들은 이곳이 단순한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역사적 서사의 공간임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오리정을 지나 북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노거수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 대말방죽에 닿는다. 이곳은 조선시대 ‘반보기’ 풍습이 행해지던 애틋한 만남의 장소였다. 추석 직후 시집간 딸과 친정어머니가 중간 지점에서 만나 회포를 풀던 이 숲은, 모녀들의 눈물과 웃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소통의 광장이었다. 현재는 방죽 수면을 마름이 뒤덮고 멸종위기종인 가시연이 힘겹게 싹을 틔우는 한적한 저수지로 변모했으나, 여전히 그 제방과 숲에는 수백 년 전 여인들이 나누었던 따뜻한 온기가 서려 있다.길은 다시 오수천변의 망북정으로 이어진다. 깎아지른 바위 위에 우뚝 솟은 망북정은 18세기 관리들이 북녘 한양의 임금을 향해 절을 올리며 충절을 다짐하던 곳이다. 바위에 선명하게 새겨진 ‘망북정’ 암각서는 당시 지식인들이 공유했던 충의의 가치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정자에서 내려다보이는 오수천 건너편은 우리에게 친숙한 ‘오수개 설화’의 실제 발생지로 추정되는 상리 천변이다. 흔히 원동산의 동상으로만 기억되는 오수개의 이야기는 사실 이 차가운 물줄기 옆에서 주인을 구하고 숨진 충직한 짐승의 실화에서 비롯되었다.과거 오수역참은 고을 관아와 맞먹는 규모를 자랑하던 국가 교통의 핵심 요충지였다. 고려와 조선 시대를 관통하며 천 년의 세월 동안 통신과 운송을 담당했던 이곳에는 이제 한 그루의 은행나무 노거수만이 남아 역사의 부침을 지켜보고 있다. 500년 전 한 선비가 읊었던 시구에는 역 앞에 실재했던 ‘개 묻은 나무(獒樹)’에 대한 기록이 생생히 남아 있어, 설화 속 이야기가 단순한 허구가 아닌 지역민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박힌 역사적 사실임을 뒷받침한다. 임금을 그리워하는 나그네의 시름과 개의 충절이 한 공간에서 공명하고 있었던 셈이다.탐방의 종착지인 원동산에는 오수개의 넋을 기리는 의견비각과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일제강점기 철교 공사 중 발굴된 의견비는 우여곡절 끝에 이곳으로 옮겨져 3.1 만세운동의 함성이 울려 퍼졌던 장터 한복판을 지키고 있다. 조형물 주위에 새겨진 부조 속 오수개는 불길 속에서 주인을 구하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긴박한 순간을 보여준다. 이는 충의라는 거창한 명분을 넘어, 끝까지 곁을 지키는 존재로서의 다정함과 헌신이 무엇인지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조용히 되묻는다.춘향의 이별로 시작해 오수개의 희생으로 마무리되는 이 옛길은 서로 다른 시대의 기억들이 오수천을 사이에 두고 겹쳐지는 거대한 박물관과 같다. 직선화된 국도 옆으로 잊혀가는 지명들과 잡초 무성한 옛터들은 우리가 보존해야 할 소중한 문화 자산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오갔던 이 길은 지금도 설화와 풍경, 그리고 오래된 기억을 품은 채 묵묵히 흐르고 있다. 역사의 흔적을 찾아 걷는 이 길 위에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고, 잊혔던 가치들이 다시 살아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