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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노쇼 선언하자 中 "오히려 좋다"며 미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의 이목이 쏠렸던 미중 정상회담을 전격 연기하겠다고 발표하며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다. 이란과의 전쟁이 예상보다 길어지면서 국내외 현안 대응을 위해 당장 중국으로 떠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공식화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현지시간으로 16일 백악관에서 취재진을 만나 2주 뒤로 예정되었던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을 약 한 달가량 미뤄달라고 요청했다고 직접 밝혔다. 그는 중국을 방문하고 싶지만 전쟁이라는 엄중한 상황 속에서 대통령으로서 미국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을 강조하며 이번 결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하지만 이번 일정 연기를 바라보는 국제 사회의 시각은 복잡하다. 단순한 일정 조율이라는 백악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일각에서는 이를 중국을 향한 고도의 정치적 압박 수단으로 해석하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인 트루스소셜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중국의 호르무즈 해협 호위 연합군 참여를 거듭 촉구해왔다는 점이 이러한 해석에 힘을 실어준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수입하는 석유의 90%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는 사실을 언급하며 중국이 자국 선박을 보호하기 위해 군사적 작전에 동참해야 한다고 압박해왔다.

 

트럼프 행정부 내 주요 인사들은 이번 연기 결정이 정치적 수단이라는 확대해석을 경계하며 진화에 나섰다. 베선트 미 재무부 장관은 경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연기가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을 위한 중국의 협조를 끌어내기 위한 요구 조건 때문이라는 소문은 전혀 사실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그는 현재 이란과의 전쟁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만큼 대통령이 자리를 비우기 어려운 단순한 일정상의 문제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이는 외교적 결례 논란을 방지하고 경제적 협상을 이어가려는 전략적 판단으로 풀이된다.

 


흥미로운 점은 중국 측의 반응이다. 블룸버그 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시진핑 주석과 중국 정부 입장에서도 이번 일정 연기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당초 다음 달 말 트럼프 대통령의 방중을 제안했던 만큼 준비 시간을 벌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소식통들은 정상회담 일정이 뒤로 밀리면서 오히려 대만 문제를 포함한 안보와 외교 등 양국 간의 민감하고 폭넓은 의제에 대해 더 깊이 있는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당초 계획대로라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달 31일부터 내달 2일까지 중국을 방문할 예정이었다. 현직 미국 대통령의 방중은 트럼프 집권 1기였던 2017년 11월 이후 약 8년 5개월 만에 이루어지는 역사적인 이벤트였다. 양국은 이번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기 위해 최근 프랑스 파리에서 고위급 회담을 열고 농산물 구매 확대와 핵심 광물 등 민감한 경제 현안들을 조율해왔다. 하지만 전쟁이라는 변수가 돌출되면서 공들여 준비해온 외교 일정이 전면 수정되는 사태를 맞이하게 되었다.

 


미국이 이란과의 전쟁에서 고전하고 있다는 점도 이번 결정의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달 공습을 통해 이란의 최고 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를 제거하는 데 성공하며 초반 기세를 잡았으나 이후 상황은 녹록지 않다. 이란이 주변 걸프 국가들과 세계 경제를 인질로 삼아 끈질기게 버티는 모드에 돌입하면서 미국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국제 유가 급등이라는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단기전으로 끝날 줄 알았던 전쟁이 장기전 양상을 띠면서 미국의 외교적 선택지는 좁아지고 있다.

 

이번 방중 연기로 인해 또 다른 빅 이벤트였던 북미 정상 간의 만남 역시 불투명해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회동은 이번 방중 일정의 하이라이트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현재로서는 기약 없이 미뤄지게 되었다. 김민석 국무총리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만남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입장을 보였지만 그 시기가 이번 방중 때가 될지 아니면 그 이후가 될지는 유동적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전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미중 정상회담 연기 요청은 이란 전쟁이라는 늪에 빠진 미국의 절박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린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감이 고조되는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이 한 달 뒤 시진핑 주석과의 만남에서 어떤 외교적 반전을 꾀할지 전 세계가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전쟁의 포화 속에서 멈춰버린 시계가 다시 돌아갈 때쯤이면 국제 정세는 또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대만 아리산의 붉은 눈물, 녹슨 철길 위에 흐른다

위한 경유지가 아니다. 도시를 관통하는 낡은 철로부터 100년 된 목조 가옥, 시장 골목의 뜨거운 국물 한 그릇까지, 모든 것이 아리산이라는 거대한 산의 서문 역할을 한다.자이의 심장부에는 아리산의 원시림을 수탈하기 위해 일제가 건설한 삼림 철도의 흔적이 선명하다. 차고지에 멈춰 선 붉은 증기기관차와 녹슨 선로는 낭만적인 풍경 이면에 아픈 역사의 상처를 품고 있다. 천 년 수령의 편백과 삼나무를 베어 나르던 이 길은, 숲의 눈물이 흐르던 통로이자 근대화의 동력이었던 이중적인 역사를 증언한다.일제강점기 벌목 노동자들이 머물던 관사 단지는 이제 '히노키 빌리지'라는 이름의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낡고 불편한 과거를 지우는 대신, 보수하고 다듬어 현재와 공존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삐걱거리는 마루를 밟으며 편백 향기 가득한 거리를 걷다 보면, 상처를 미화하지 않고 정직하게 마주하려는 도시의 성숙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도시의 묵직한 역사는 사람의 온기로 채워진다. 6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린총밍' 식당의 뜨거운 어탕(魚湯) 한 그릇은 자이의 따뜻한 심장과도 같다. 커다란 솥에서 끓어오르는 뽀얀 국물과 왁자지껄한 시장의 활기는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맛이다. 투박하지만 깊은 감칠맛이 밴 국물은 낯선 여행자의 경계심마저 녹여버린다.자이의 여정은 결국 산으로 향한다. 이번에는 삼림열차 대신 차를 몰아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중산간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오를수록 공기는 서늘해지고, 산허리를 감싼 안개는 풍경에 깊이를 더한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아리산의 다원은 이 산이 품고 있는 또 다른 정수를 드러낸다.혹독한 일교차와 짙은 안개를 견디며 농축된 향을 품은 아리산 우롱차. 찻잔에 피어오르는 화사한 꽃향기와 뒤이어 밀려오는 부드러운 단맛은 단순한 미각적 경험을 넘어선다. 그것은 장엄한 산의 풍경을 입안에 머금는 것과 같은 고요한 의식이며, 이 도시와 산이 들려주는 긴 이야기의 마지막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