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글로벌

미국, 실패한 '제재 만능주의' 버린다

 미국 정부가 그동안 반미 성향 국가들을 굴복시키기 위해 전방위로 쏟아부었던 경제 제재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뜯어고치기 시작했다. 미 재무부의 분석에 따르면 신규 제재 지정 건수는 2017년 880건에서 2024년 3,000건 이상으로 폭증했으나, 정작 제재 대상국들은 미국의 금융 시스템 밖에서 독자적인 생존망을 구축하며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특히 최근 이란과의 갈등 과정에서 미국의 경제적 압박이 실질적인 행동 변화를 끌어내지 못했다는 비판이 제기되자, 행정부 내부에서는 기존 방식의 효용성이 수명을 다했다는 위기감이 확산하고 있다.

 

이란과 러시아 등은 미국의 금융 봉쇄를 뚫기 위해 유령회사와 중개인을 활용한 고도의 우회 경로를 확보했다. 이란은 제재 속에서도 중국에 석유를 판매해 연간 수백억 달러의 수익을 올렸으며, 러시아 역시 전쟁 수행 능력을 유지하며 서방의 압박을 무력화하고 있다. 미국은 이들의 자금줄을 죄기 위해 호르무즈 해협 역봉쇄라는 물리적 수단까지 동원해야 할 정도로 경제 제재의 집행력에 한계를 드러냈다. 이는 금융망 차단이라는 전통적인 압박 수단이 더 이상 적대국들에 위협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북한의 사례는 더욱 극적이다. 국제사회의 강력한 제재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암호화폐 탈취를 통해 수십억 달러의 불법 자금을 확보하며 핵 개발을 지속하고 있다. 전 세계에 배치된 금융 요원들이 자금 세탁을 주도하고 있으며, 우크라이나 전쟁 중 러시아와의 밀착을 통해 새로운 외화 벌이 창구를 마련한 정황도 포착됐다. 최근 평양 시내에 자동차가 늘어나고 신도시가 건설되는 등 겉으로 드러나는 경제 지표들은 미국의 제재가 북한 수뇌부의 의지를 꺾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베네수엘라와 미얀마 등 다른 제재 대상국들 역시 미국의 압박 속에서 장기간 정권을 유지하며 버티는 모습을 보였다. 베네수엘라의 경우 올해 초 미군이 직접 개입해 물리적으로 지도부를 축출하기 전까지 10년 넘게 경제 제재를 견뎌냈다. 이러한 사례들은 경제적 고립만으로는 독재 정권의 붕괴나 정책 변화를 유도하기 어렵다는 점을 시사한다. 오히려 장기화된 제재가 현지 주민들의 고통만 가중시키고 정권의 결속력을 다지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경제 사령탑인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이러한 구태의연한 제재 방식을 '시대착오적'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최근 연설을 통해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막연한 봉쇄보다는 명확한 목표를 가진 표적화된 조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래된 제재들이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양산하는 것을 막기 위해 쓸모없어진 지정을 과감히 삭제하고, 적대국이 즉각적인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공격적인 수단을 도입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는 향후 미국의 대외 압박 전략이 양적 확대보다는 질적 정밀함에 집중될 것임을 예고한다.

 

미 행정부의 이번 제재 프로그램 재검토는 국제 금융 질서에도 적지 않은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미국은 우방국들과 협력해 제재 우회로로 활용되는 제3국 기업들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한편, 암호화폐 등 신종 자금 조달 수단을 차단하기 위한 기술적 대응책 마련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제재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미국의 새로운 시도가 반미 국가들의 정교한 생존 전략을 뚫고 실질적인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전 세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유네스코 타이틀, 주민에겐 생존권 족쇄?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유네스코의 엄격한 보존 지침이 오히려 지역의 현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거나,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관광객이 몰려들며 원주민의 일상을 파괴하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스스로 유산 지위를 내려놓겠다는 지역들이 하나둘 등장하며 국제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슬로바키아의 산간 마을 블콜리네츠는 이러한 갈등의 최전선에 서 있다. 1993년 중세 오두막의 원형을 간직했다는 이유로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렸지만, 정작 이곳에 거주하는 20여 명의 주민에게 등재는 재앙에 가까웠다. 매년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좁은 마을을 점령하면서 사생활 침해와 소음 문제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박제된 유산이 아닌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를 주장하며 공식적인 등재 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국제기구의 규제가 주민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족쇄가 된 셈이다.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응고롱고로 자연보존지역 역시 보존과 생존권이 충돌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유네스코의 유산 관리 정책이 강화되면서 이곳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마사이족 주민들이 삶의 터전인 목초지에서 쫓겨나는 상황이 발생했다. 마사이 국제연대동맹은 원주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차라리 세계유산 목록에서 이 지역을 제외해달라고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보존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되는 강제 이주가 인권 침해 논란으로 번지며 유네스코의 보존 철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이미 유네스코와의 정면충돌 끝에 지위를 박탈당한 사례들도 존재한다.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2009년 세계유산 목록에서 강제 삭제됐다. 극심한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현대식 다리 건설을 추진하자 유네스코가 경관 훼손을 이유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투표를 통해 유네스코 타이틀 대신 출퇴근의 편리함과 지역 발전을 선택했다. 이는 국제기구의 보존 권고보다 지역 공동체의 실질적인 필요가 우선시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영국의 리버풀 해상 무역 도시 또한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리버풀시는 쇠락한 항구 지역을 재개발해 경제 활력을 찾으려 했으나, 유네스코는 역사적 가치 훼손을 이유로 사업 철회를 압박했다. 결국 리버풀은 2021년 세계유산 지위를 잃었지만, 당시 시장은 유네스코가 도시를 불모지로 남겨두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흥미로운 점은 지위 박탈 이후에도 이들 지역의 관광객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세계유산 타이틀이 없어도 지역의 매력만 충분하다면 관광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문화재 전문가들은 이제 유네스코가 일방적인 보존만을 강요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적지가 박물관의 전시품이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주민의 생활 편의와 경제적 자립을 고려한 유연하고 영리한 보존 계획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세계유산 반납 행렬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와 과거가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상생 모델을 찾는 것이 전 세계 유적지들이 마주한 시급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