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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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 나쁘다고 국대 해체?…FIFA 징계 초읽기 들어간 가봉

 가봉 축구계가 국가대표팀의 아프리카 네이션스컵(AFCON) 참패를 이유로 한 정부의 초강경 조치에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다. 가봉 정부는 조별리그 3전 전패라는 수치스러운 성적표에 대한 책임을 물어 국가대표팀 운영을 무기한 중단하고, 감독을 포함한 코칭스태프 전원을 경질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팀의 간판스타이자 역대 최다 득점자인 피에르-에므리크 오바메양을 국가대표에서 영구 제명하는 전례 없는 결정을 내리면서 축구계를 충격에 빠뜨렸다. 성적 부진을 이유로 정부가 직접 나서 대표팀을 사실상 해체하고 선수 선발에까지 개입한 이번 사태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강력한 징계로 이어질 수 있는 심각한 '정부 개입'에 해당해, 가봉 축구의 미래 자체를 암흑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정부의 분노가 폭발한 결정적인 계기는 코트디부아르와의 조별리그 최종전이었다. 이미 2패로 탈락이 확정된 상황이었지만, 유종의 미를 거두기 위해 나선 이 경기에서 가봉은 한때 2-0으로 앞서나가며 희망을 보였다. 그러나 후반 들어 급격한 집중력 저하를 보이며 내리 3골을 허용, 2-3으로 충격적인 역전패를 당했다. 이 경기는 "국가와 국민의 기대를 저버린 수치스러운 경기력"이라는 정부의 규정과 함께 인내심의 마지막 끈을 끊어버렸다. 여기에 주장인 오바메양이 허벅지 통증을 이유로 이 경기에 불참하고 소속팀으로 조기 복귀한 '태도 논란'까지 겹쳤다. 팀이 최악의 위기에 빠진 상황에서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않은 그의 행동은 '애국심 결여'로 낙인찍혔고, 결국 가봉 축구의 영웅에서 하루아침에 국가의 적으로 전락하는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다.

 


정부의 일방적인 철퇴는 오바메양뿐만 아니라 대표팀 전체에 날벼락처럼 떨어졌다. 특히 과거 손흥민의 동료로 국내 팬들에게도 익숙한 데니스 부앙가처럼 "가봉 유니폼을 입는 것은 영광"이라며 남다른 애국심을 보여 온 선수들까지 강제로 대표팀 유니폼을 반납해야 할 처지에 놓였다. 개인의 의지나 실력과 무관하게 국가를 위해 뛸 기회 자체가 박탈당한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번 사태가 FIFA가 가장 엄격하게 금지하는 '정부의 축구 행정 개입'이라는 점이다. FIFA는 정관을 통해 회원국의 축구협회 독립성을 보장하며, 정부가 감독 경질이나 선수 선발에 관여하는 행위를 명백한 징계 사유로 본다. 과거에도 성적 부진을 이유로 정부가 개입했던 나이지리아, 카메룬 등이 FIFA로부터 자격 정지라는 철퇴를 맞은 바 있어, 가봉 역시 국제 무대 퇴출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설상가상으로, 체육부 장관의 공식 발표 영상이 몇 시간 만에 삭제되고, 제재를 뒷받침할 공식 행정 문서가 확인되지 않는 등 가봉 정부 내부에서조차 혼선이 빚어지고 있다. 이는 FIFA의 징계 가능성을 뒤늦게 인지하고 사태 수습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분석을 낳고 있다. 성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충격 요법'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이미 전 세계 언론을 통해 사태가 알려진 이상 FIFA의 조사를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한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한 정부의 성급한 결정이 결국 가봉 축구 전체를 국제 사회에서 고립시키는 자충수가 될 위기에 처했다.

 

 

 

대통령의 귀환, '비운의 후궁들' 칠궁의 문을 닫다

, 다음 달부터는 엄격한 사전 예약제로만 그 내부를 엿볼 수 있게 된다.이번 관람 방식 변경은 대통령실의 청와대 이전 결정에 따른 후속 조치다. 국가유산청은 대통령 집무실 주변의 보안 강화와 관람객 안전 및 질서 유지를 위해 제한 관람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한동안 일반에 활짝 열렸던 칠궁이 다시금 삼엄한 관리 체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새로운 관람 방식에 따르면, 2월 1일부터 칠궁을 방문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온라인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관람은 하루 5차례, 정해진 시간에만 가능하며 한 번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도 30명으로 제한된다. 하루 최대 150명에게만 허락되는 셈이다.관람객들은 약 40분 동안 문화유산 해설사의 인솔에 따라 움직여야 하며, 안전관리 요원이 전 과정을 동행한다. 과거처럼 자유롭게 경내를 거닐며 사색에 잠기는 경험은 당분간 어려워졌다. 이는 칠궁이 지닌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국가 중요 시설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칠궁은 왕을 낳았지만, 끝내 왕비가 되지 못한 일곱 후궁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당 '육상궁'에서 시작되어, 이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후궁들의 사당이 1908년 한자리에 모이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오랜 기간 금단의 땅이었던 이곳은 2001년 처음 대중에 공개된 이후, 특히 청와대 개방과 맞물려 많은 이들이 찾는 역사적 명소로 자리 잡았다. 현재 칠궁에는 숙빈 최씨의 육상궁을 비롯해 희빈 장씨의 대빈궁 등 총 7개의 사당이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