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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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kg 뺀 선동열, 오승환도 못 알아본 '국보'의 변신

 한국 야구 역사상 가장 강력한 사제지간으로 꼽히는 선동열 전 국가대표팀 감독과 오승환 선수가 20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다시 마주했다. 지난 6일 오승환의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공개된 이번 만남은 화성드림파크야구장에서 열린 농아인야구대회 현장에서 이뤄졌다. 시구자와 시타자로 나란히 선 두 전설은 경기장 안팎에서 서로에 대한 깊은 존경과 애정을 드러내며 지켜보는 이들의 마음을 훈훈하게 했다. 특히 몰라보게 홀쭉해진 모습으로 나타난 선 전 감독의 근황은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조차 깜짝 놀라게 할 정도였다.

 

오승환은 스승의 얼굴을 보자마자 훨씬 젊어지고 밝아지셨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에 선 전 감독은 현장을 떠나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으니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해졌다고 화답하며 자신의 변화를 설명했다. 삼성 라이온즈 감독 시절 극심한 압박감 속에 110kg까지 나갔던 체중을 최근 꾸준한 관리를 통해 85kg까지 줄였다는 고백은 철저한 자기관리의 대명사인 오승환마저 감탄케 했다. 25kg이라는 경이로운 감량 수치는 국보급 투수라는 명성에 걸맞은 그의 의지를 다시 한번 확인시켜 주었다.

 


두 사람의 인연은 2005년 신인 드래프트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 전 감독은 당시 삼성 수석코치 신분으로 대학 야구 경기장을 직접 찾아 오승환의 투구를 지켜봤던 일화를 회상했다. 오전 9시라는 이른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운드에서 뿜어져 나오는 오승환의 압도적인 구위에 매료되었던 순간을 생생하게 전달했다. 다른 팀들이 부상 우려로 오승환을 외면할 때, 선 전 감독은 오히려 그의 독특한 투구 폼과 디셉션의 가치를 알아보고 스카우트 팀에 영입을 강력히 요청하며 운명적인 만남을 성사시켰다.

 

선 전 감독의 안목은 곧바로 삼성 라이온즈의 황금기로 이어졌다. 2005년 지휘봉을 잡은 선 전 감독과 신인 오승환은 2년 연속 통합 우승이라는 대기록을 합작하며 삼성 왕조의 기틀을 닦았다. 오승환은 데뷔 첫해 신인왕과 한국시리즈 MVP를 동시에 석권하는 괴력을 발휘했고, 이듬해에는 47세이브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며 끝판대장의 탄생을 알렸다. 선 전 감독은 당시 오승환의 투구 폼에 대해 부상 우려가 있다는 주변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고치면 오히려 장점이 사라질 것이라며 제자의 개성을 끝까지 믿고 지지해주었다.

 


오승환은 오늘의 자신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은 스승의 남다른 시각 덕분이었다며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남들이 부정적으로 보던 투구 폼을 최고의 무기로 인정해준 스승의 믿음이 있었기에 한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 메이저리그를 누비는 전설적인 마무리 투수가 될 수 있었다는 고백이다. 오승환은 KBO 리그 통산 400세이브를 훌쩍 넘긴 대기록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여전히 스승 앞에서는 20년 전 처음 마운드에 올랐던 신인의 자세로 돌아가 경청하는 모습을 보였다.

 

두 전설의 재회는 단순히 과거를 추억하는 자리를 넘어, 진정한 리더십과 신뢰가 한 선수의 인생과 한국 야구 지형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다. 선 전 감독의 날카로운 통찰력과 오승환의 성실함이 만나 일궈낸 성과들은 이제 후배 야구인들에게 귀감이 되는 역사적 자산이 되었다.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스승과 불혹의 나이에도 여전히 마운드에서 돌직구를 뿌리는 제자의 모습은 한국 야구가 가진 저력과 낭만을 다시금 일깨워주며 팬들에게 깊은 여운을 남겼다.

 

 

 

유네스코 타이틀, 주민에겐 생존권 족쇄?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유네스코의 엄격한 보존 지침이 오히려 지역의 현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거나,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관광객이 몰려들며 원주민의 일상을 파괴하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스스로 유산 지위를 내려놓겠다는 지역들이 하나둘 등장하며 국제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슬로바키아의 산간 마을 블콜리네츠는 이러한 갈등의 최전선에 서 있다. 1993년 중세 오두막의 원형을 간직했다는 이유로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렸지만, 정작 이곳에 거주하는 20여 명의 주민에게 등재는 재앙에 가까웠다. 매년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좁은 마을을 점령하면서 사생활 침해와 소음 문제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박제된 유산이 아닌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를 주장하며 공식적인 등재 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국제기구의 규제가 주민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족쇄가 된 셈이다.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응고롱고로 자연보존지역 역시 보존과 생존권이 충돌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유네스코의 유산 관리 정책이 강화되면서 이곳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마사이족 주민들이 삶의 터전인 목초지에서 쫓겨나는 상황이 발생했다. 마사이 국제연대동맹은 원주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차라리 세계유산 목록에서 이 지역을 제외해달라고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보존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되는 강제 이주가 인권 침해 논란으로 번지며 유네스코의 보존 철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이미 유네스코와의 정면충돌 끝에 지위를 박탈당한 사례들도 존재한다.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2009년 세계유산 목록에서 강제 삭제됐다. 극심한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현대식 다리 건설을 추진하자 유네스코가 경관 훼손을 이유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투표를 통해 유네스코 타이틀 대신 출퇴근의 편리함과 지역 발전을 선택했다. 이는 국제기구의 보존 권고보다 지역 공동체의 실질적인 필요가 우선시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영국의 리버풀 해상 무역 도시 또한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리버풀시는 쇠락한 항구 지역을 재개발해 경제 활력을 찾으려 했으나, 유네스코는 역사적 가치 훼손을 이유로 사업 철회를 압박했다. 결국 리버풀은 2021년 세계유산 지위를 잃었지만, 당시 시장은 유네스코가 도시를 불모지로 남겨두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흥미로운 점은 지위 박탈 이후에도 이들 지역의 관광객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세계유산 타이틀이 없어도 지역의 매력만 충분하다면 관광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문화재 전문가들은 이제 유네스코가 일방적인 보존만을 강요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적지가 박물관의 전시품이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주민의 생활 편의와 경제적 자립을 고려한 유연하고 영리한 보존 계획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세계유산 반납 행렬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와 과거가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상생 모델을 찾는 것이 전 세계 유적지들이 마주한 시급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