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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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예술 배틀, '수묵별미' 수묵화 전쟁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에서 열리는 ‘수묵별미: 한·중 근현대회화’ 전시가 막바지에 접어들며 관람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전시는 한국과 중국 수교 30주년을 기념하여 양국의 대표적인 근현대 수묵채색화 작품을 통해 120여 년에 걸친 수묵화의 변천사를 조망한다.

 

전시에는 한국의 안중식, 이상범, 변관식, 이응노, 천경자, 황창배, 박대성 등 69명의 작품 74점이 출품되었으며, 중국에서는 우창숴, 푸파오스, 쉬베이훙, 치바이스 등 76명의 작품 74점이 전시된다. 전시는 양국의 근현대 수묵화 역사를 전통 계승과 현대적 변신이라는 주제로 4부로 나누어 구성되었으며, 한국은 1980년대, 중국은 1990년대 개혁개방 시기를 중요한 전환점으로 설정했다.

 

특히 수묵화 애호가들의 관심은 19세기 말~20세기 초반 중국 수묵화의 혁신을 이끈 거장들의 작품에 쏠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우창숴의 ‘구슬’(1920), 쉬베이훙의 ‘전마’(1942), 치바이스의 ‘연꽃과 원앙’(1955) 등 중국 국가문물국이 규정한 1~3급 문물 32점을 전시하며 그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기대보다 작은 작품 크기와 소량의 출품작으로 인해 중국 수묵화 특유의 대형 스케일을 기대한 관람객들에게는 다소 아쉬움을 남길 수도 있다.

 

 

반면 한국 수묵화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큰 스케일로 주목받고 있다. 쉬베이훙의 ‘전마’(1942)가 김기창의 ‘군마’(1955)보다 작은 규모를 보이면서, 한국 작가들의 대형 작품들이 더욱 돋보이는 효과를 가져왔다. 최석환의 ‘묵포도도’(19세기)와 같은 대형 병풍 작품들이 이러한 분위기를 더욱 배가시킨다.

 

문화대혁명(1966~1976)이 중국 회화사에 미친 영향도 이번 전시에서 상대적으로 덜 다뤄져 아쉬움을 남긴다. 다만, 랴오빙슝의 ‘자조’(1979)가 문화대혁명의 영향을 암시하는 작품으로 전시되었다. 또한, 리커란은 전통적인 문인화에서 벗어나 사실주의와 판화 기법을 결합한 독특한 스타일을 구축했으나, 이번 전시에서는 그의 대표적 대작을 충분히 감상하기 어려운 점이 지적된다.

 

한편, 전시는 단순히 개별 작가의 걸작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과 중국 수묵화의 전반적인 경향을 비교하며 시대적 흐름을 조망하는 데 의의를 둔다. 한국에서는 1960년대 이후 서양화의 영향을 받아 앵포르멜, 기하학적 추상, 모노크롬 회화 등 다양한 현대적 실험이 수묵화에도 적용되었으며, 특히 1980년대 이후 더욱 자유롭고 혁신적인 시도가 이루어졌다. 이에 비해 중국은 여전히 사회주의 리얼리즘 기조를 유지하면서 보다 전통적인 수묵화의 틀을 고수한 모습을 보인다.

 

미술계 관계자는 “이번 전시는 단순히 개별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넘어 한국과 중국 근현대 수묵화의 흐름을 총체적으로 비교할 수 있는 중요한 기회”라며, “다음 전시에서 더 깊이 있는 연구와 다양한 작품들이 소개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수묵별미: 한·중 근현대회화’ 전시는 오는 16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다.

 

 

 

부산 밀면의 시초 내호냉면, 100년 역사의 향기

동 소막마을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깃든 상징적인 장소다. 일제강점기 한우를 수탈해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지어졌던 거대한 소 막사들은 전쟁이 터지자 갈 곳 없는 피란민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짐승이 머물던 축사에 사람이 들어가 다락방을 만들고 삶을 이어갔던 이 독특한 주거 형태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비극적 역사의 산물이다.소막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부산의 대표 음식인 밀면의 탄생 비화와 마주하게 된다. 함경남도 흥남에서 피란 내려온 일가가 1919년부터 이어온 냉면의 전통을 부산에서 다시 꽃피운 것이 그 시작이다. 전쟁 직후 메밀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 구호 물자로 받은 밀가루를 냉면 제조 방식에 접목해 탄생한 것이 바로 부산 밀면이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이 노포는 단순한 음식점을 넘어 척박한 피란 살이 속에서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던 실향민들의 슬픔을 달래주던 안식처였다.피란민들의 또 다른 눈물이 서린 곳은 영도다리라고 불리는 영도대교다. 1934년 준공된 국내 최초의 연륙교이자 도개교인 이곳은 헤어진 가족을 찾으려는 이산가족들이 매일같이 모여들던 만남의 광장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은 "살아있다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 하나로 모진 세월을 견뎠다. 다리의 한쪽 끝이 하늘을 향해 들리는 생경한 풍경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재회를 향한 희망의 상징이었으며, 수많은 대중가요의 소재가 되어 피란민들의 고달픈 삶을 대변했다.영도다리는 원래 피란수도 유산 목록에 없었으나 그 역사적 상징성을 인정받아 최근 추가로 등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 하루에 많게는 일곱 번씩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를 들어 올렸던 도개 행사는 1960년대에 중단되었다가 2013년에 이르러서야 재개되었다. 현재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만 다리가 올라가는 장관을 볼 수 있어, 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다리 주변은 매주 장인인산해를 이룬다. 다리가 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70여 년 전 이곳에서 가족을 기다리던 이들의 간절함을 되새긴다.부산의 산복도로와 항구 주변에 흩어진 이 유산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인류의 회복력을 보여준다. 소 막사를 집으로 개조하고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먹으며 이산가족을 기다리던 그 시절의 기록은 이제 인류 공통의 유산으로 보존될 준비를 하고 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의 현지 실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부산시는 이들 유산이 지닌 역사적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 소막마을의 원형 복원과 영도다리 주변의 역사 공원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피란수도 부산의 1,023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인 동시에 가장 강인했던 시간이었다. 소막마을의 밀면 향기와 영도다리의 도개 소리는 세대를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한국인의 생명력을 세계에 증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부산의 골목마다 스며있는 피란 시절의 기억은 이제 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될 준비를 마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