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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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돈 문제였나…영화인들의 성지, 명필름아트센터 폐관

 한국 영화사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했던 제작사 명필름의 복합문화공간 '명필름아트센터'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지난 2015년 5월 1일 경기도 파주에 문을 연 지 약 11년 만인 2026년 2월 1일, 운영을 공식적으로 종료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명필름아트센터 측은 지난 24일 홈페이지를 통해 "10년 동안 명필름아트센터를 사랑하고 찾아주신 많은 분께 감사드린다"며 안타까운 폐관 소식을 전했다. 영화계와 팬들 사이에서는 한국 영화의 중요한 자산이자 사랑방 역할을 해왔던 공간의 퇴장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명필름아트센터의 폐관이 더욱 안타깝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곳이 단순한 영화관을 넘어 한국 영화의 정신과 역사를 담고 있는 상징적인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운영 주체인 명필름은 1997년 <접속>을 시작으로 <공동경비구역 JSA>, <와이키키 브라더스>, <시라노; 연애조작단>, <건축학개론> 등 작품성과 대중성을 겸비한 굵직한 작품들을 선보이며 한국 영화의 르네상스를 이끌어 온 제작사다. 이들의 정신을 담아 국내 대표 건축가 승효상의 설계로 탄생한 명필름아트센터는 영화관뿐만 아니라 전시장, 공연장, 아카이브 룸까지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서 영화 팬들의 성지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특히 4K 영사 시스템과 돌비 애트모스 사운드 시스템을 갖춘 상영관은 최고의 관람 환경을 제공하며 시네필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이처럼 영화 팬들의 열렬한 사랑과 지지에도 불구하고 명필름아트센터는 결국 냉혹한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다. 폐관의 직접적인 원인은 수년간 누적된 적자로 인한 경영난이다. 수준 높은 문화 예술 공간을 유지하기 위한 높은 운영 비용과 그에 미치지 못하는 수익 구조가 발목을 잡은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전반적인 영화 산업과 오프라인 공간이 큰 타격을 입은 것 역시 경영난을 가중시킨 요인으로 분석된다. 결국 영화에 대한 순수한 열정과 팬들의 사랑만으로는 계속되는 적자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셈이며, 이는 비단 명필름아트센터만의 문제가 아닌 독립·예술 영화관들이 처한 공통적인 위기를 보여주는 씁쓸한 단면이기도 하다.

 

비록 문은 닫지만, 명필름아트센터는 마지막까지 영화 팬들과 함께하는 자리를 마련하며 아름다운 작별을 고한다. 내년 1월 1일부터 폐관일인 2월 1일까지 한 달간 마지막 기획전 '굿바이, 명필름아트센터'를 개최하는 것이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명필름의 대표작이자 센터의 정체성과도 맞닿아 있는 <와이키키 브라더스>를 비롯해, 아직 정식 개봉하지 않은 다큐멘터리 <길위의 뭉치>, 그리고 프로그래머와 대표가 직접 추천하는 <레이디 버드>, <믹의 지름길> 등 총 11편의 의미 있는 작품들이 상영된다. 이 중 5편은 감독과 배우가 직접 참여하는 관객과의 대화(GV)까지 예정되어 있어, 11년간의 추억을 간직한 팬들에게는 센터와 작별 인사를 나눌 수 있는 마지막이자 가장 특별한 기회가 될 전망이다.

 

대통령의 귀환, '비운의 후궁들' 칠궁의 문을 닫다

, 다음 달부터는 엄격한 사전 예약제로만 그 내부를 엿볼 수 있게 된다.이번 관람 방식 변경은 대통령실의 청와대 이전 결정에 따른 후속 조치다. 국가유산청은 대통령 집무실 주변의 보안 강화와 관람객 안전 및 질서 유지를 위해 제한 관람으로의 전환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한동안 일반에 활짝 열렸던 칠궁이 다시금 삼엄한 관리 체계 속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새로운 관람 방식에 따르면, 2월 1일부터 칠궁을 방문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온라인 사전 예약을 해야 한다. 관람은 하루 5차례, 정해진 시간에만 가능하며 한 번에 입장할 수 있는 인원도 30명으로 제한된다. 하루 최대 150명에게만 허락되는 셈이다.관람객들은 약 40분 동안 문화유산 해설사의 인솔에 따라 움직여야 하며, 안전관리 요원이 전 과정을 동행한다. 과거처럼 자유롭게 경내를 거닐며 사색에 잠기는 경험은 당분간 어려워졌다. 이는 칠궁이 지닌 역사적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국가 중요 시설의 안보를 확보하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칠궁은 왕을 낳았지만, 끝내 왕비가 되지 못한 일곱 후궁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영조의 생모인 숙빈 최씨의 사당 '육상궁'에서 시작되어, 이후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후궁들의 사당이 1908년 한자리에 모이면서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오랜 기간 금단의 땅이었던 이곳은 2001년 처음 대중에 공개된 이후, 특히 청와대 개방과 맞물려 많은 이들이 찾는 역사적 명소로 자리 잡았다. 현재 칠궁에는 숙빈 최씨의 육상궁을 비롯해 희빈 장씨의 대빈궁 등 총 7개의 사당이 고즈넉한 분위기 속에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