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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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 11시의 국악 힐링, 17년 장수 공연 '다담'의 귀환

 악관의 힘찬 호령과 함께 웅장한 대취타의 선율이 국립국악원 우면당의 공기를 갈랐다. 징과 북, 장구가 만들어내는 강렬한 타격음에 나발과 나각의 장중한 울림이 더해지자 객석은 순식간에 압도됐다. 25일 열린 올해 첫 '다담' 공연은 잡귀를 쫓고 기운을 북돋는 대취타로 화려하게 시작을 알렸다. 2010년 첫선을 보인 이후 17년 동안 135회나 이어져 온 이 공연은 국립국악원을 대표하는 장수 프로그램으로, 전통 예술에 익숙하지 않은 현대인들을 위해 기획된 국악 마티네의 정수로 꼽힌다.

 

매달 마지막 주 수요일 오전 11시에 열리는 이 무대는 이름 그대로 '차(茶)와 이야기(談)'가 있는 공간이다. 공연 시작 전 로비에서 제공되는 정갈한 다과와 차는 관객들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예비 단계다. 클래식 공연계의 마티네 형식을 국악에 접목해 오전 시간대 주부와 은퇴자, 그리고 인근 직장인들을 공연장으로 불러모았다. 친절한 해설과 함께 전통 음악과 무용을 소개하며 국악은 어렵고 지루하다는 편견을 깨는 데 앞장서 온 결과, 이제는 전 연령층이 즐기는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이날 공연은 황수경 아나운서의 매끄러운 진행 아래 윤대현 서울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강연자로 나서 의미를 더했다. 윤 교수는 현대인의 고질병인 무기력을 극복하고 회복탄력성을 높이는 방법에 대해 관객들과 대화를 나눴다. 강연에 앞서 펼쳐진 대취타 공연을 본 윤 교수는 나쁜 잡념이 씻겨 내려가는 듯한 치유의 경험이었다며 국악의 힘을 높게 평가했다. 인문학적 강연과 전통 예술의 만남은 관객들에게 지적 충족감과 정서적 위안을 동시에 제공하며 다담만의 독보적인 색깔을 완성했다.

 

공연의 구성 또한 다채로웠다. 국립국악원 정악단의 위엄 있는 연주에 이어 민속악단은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가야금병창 '흥보가'와 '심청가'의 주요 대목을 선보였다. 특히 이날의 백미는 무용단이 선보인 한량무였다. 갓을 쓰고 도포를 휘날리며 부채를 든 네 명의 남성 무용수들이 보여준 절제된 춤사위는 한국 전통 춤의 우아함과 기교를 가감 없이 드러냈다. 라이브 반주에 맞춰 흐르는 무용수들의 정중동(靜中動) 미학에 객석에서는 연신 박수갈채와 탄성이 터져 나왔다.

 


다담의 성공 비결은 철저한 관객 중심의 기획에 있다. 공연이 열리는 우면당은 별도의 음향 장비 없이도 악기와 목소리의 울림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 국악 본연의 소리를 감상하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췄다. 이러한 품질 덕분에 최근 티켓 가격 인상에도 불구하고 유료 관객 점유율은 여전히 80~90%를 상회한다. 관객층 역시 50~60대뿐만 아니라 20~30대 젊은 층과 외국인 관광객까지 확대되며 국악 대중화의 성공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올해 다담은 여경래 셰프, 송길영 작가, 장동선 뇌과학자 등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인사들을 초청해 더욱 풍성한 이야기를 들려줄 계획이다. 국립국악원 산하 4개 악단이 준비한 수준 높은 공연과 동시대를 살아가는 전문가들의 강연을 결합해 관객 저변을 지속적으로 넓혀나간다는 방침이다. 국악계 안팎에서는 다담과 같은 기획 공연이 서울을 넘어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전통 예술이 시민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기를 기대하고 있다. 국립국악원은 국악의 원형을 지키면서도 현대인과 호흡할 수 있는 접점을 끊임없이 모색하며 다음 달 공연을 준비 중이다.

 

대만 아리산의 붉은 눈물, 녹슨 철길 위에 흐른다

위한 경유지가 아니다. 도시를 관통하는 낡은 철로부터 100년 된 목조 가옥, 시장 골목의 뜨거운 국물 한 그릇까지, 모든 것이 아리산이라는 거대한 산의 서문 역할을 한다.자이의 심장부에는 아리산의 원시림을 수탈하기 위해 일제가 건설한 삼림 철도의 흔적이 선명하다. 차고지에 멈춰 선 붉은 증기기관차와 녹슨 선로는 낭만적인 풍경 이면에 아픈 역사의 상처를 품고 있다. 천 년 수령의 편백과 삼나무를 베어 나르던 이 길은, 숲의 눈물이 흐르던 통로이자 근대화의 동력이었던 이중적인 역사를 증언한다.일제강점기 벌목 노동자들이 머물던 관사 단지는 이제 '히노키 빌리지'라는 이름의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낡고 불편한 과거를 지우는 대신, 보수하고 다듬어 현재와 공존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삐걱거리는 마루를 밟으며 편백 향기 가득한 거리를 걷다 보면, 상처를 미화하지 않고 정직하게 마주하려는 도시의 성숙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도시의 묵직한 역사는 사람의 온기로 채워진다. 6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린총밍' 식당의 뜨거운 어탕(魚湯) 한 그릇은 자이의 따뜻한 심장과도 같다. 커다란 솥에서 끓어오르는 뽀얀 국물과 왁자지껄한 시장의 활기는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맛이다. 투박하지만 깊은 감칠맛이 밴 국물은 낯선 여행자의 경계심마저 녹여버린다.자이의 여정은 결국 산으로 향한다. 이번에는 삼림열차 대신 차를 몰아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중산간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오를수록 공기는 서늘해지고, 산허리를 감싼 안개는 풍경에 깊이를 더한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아리산의 다원은 이 산이 품고 있는 또 다른 정수를 드러낸다.혹독한 일교차와 짙은 안개를 견디며 농축된 향을 품은 아리산 우롱차. 찻잔에 피어오르는 화사한 꽃향기와 뒤이어 밀려오는 부드러운 단맛은 단순한 미각적 경험을 넘어선다. 그것은 장엄한 산의 풍경을 입안에 머금는 것과 같은 고요한 의식이며, 이 도시와 산이 들려주는 긴 이야기의 마지막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