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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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판 '난쏘공'의 등장, 가난을 팔아야 하는 시대

 특유의 발랄한 상상력으로 사랑과 이별을 그려온 이유리 작가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색깔의 소설을 들고 돌아왔다. 그의 첫 장편소설 '구름 사람들'은 우리 사회의 가난과 주거 문제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독자들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작가는 지금까지 유지해 온 경쾌한 문체를 의도적으로 내려놓고, 가장 슬프고 무거운 이야기를 통해 현실의 민낯을 드러낸다.

 

소설은 땅에 발붙일 곳 없어 하늘 위 구름에 무허가로 터를 잡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이 기발한 설정은 작가가 신혼집을 구하러 다니며 느꼈던 개인적인 경험에서 출발했다. 하늘을 뒤덮은 빌딩 숲을 보며 '저 많은 집 중에 내 집 하나 없다'는 박탈감과 '차라리 공짜인 구름에 살면 어떨까' 하는 상상이 작품의 씨앗이 되었다.

 


작품 속 '구름'은 중의적인 의미를 담은 공간이다. 유독 물질이 엉겨 붙어 만들어진 분홍빛 구름은 멀리서 보면 동화처럼 아름답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위태롭고 가난한 현실 그 자체다. 이는 가난을 멀리서 낭만적으로 소비하는 외부의 시선과, 그 안에서 고통받는 당사자의 삶 사이의 괴리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이 소설은 자연스럽게 조세희 작가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 스스로 '난쏘공'을 염두에 두고 집필했다고 밝힐 만큼, 두 작품은 도시 빈민의 삶이라는 궤를 같이한다. 다만, '난쏘공'의 영희가 입주권을 위해 자신의 몸을 팔았다면, '구름 사람들'의 주인공 하늘은 가난을 전시하고 후원금을 받아 땅에 집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시대의 변화를 씁쓸하게 반영한다.

 


이번 작품은 사랑과 연애('브로콜리 펀치'), 이별('비눗방울 퐁') 등 개인의 감정에 집중했던 작가의 관심사가 가난과 불평등이라는 사회적 문제로 확장되었음을 보여주는 분기점이다. 작가 스스로도 나이를 먹으며 이야기의 폭이 넓어지는 것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앞으로 결핍을 가진 인물들의 이야기를 더 깊이 파고들 것을 예고했다.

 

비록 이번 작품을 통해 깊은 사회적 통찰을 보여주었지만, 이유리 작가 특유의 유쾌한 상상력은 다음 작품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 전망이다. 그는 현재 우주생물을 치료하는 지구인 의사의 이야기를 다룬 코믹 SF를 집필하며 또 다른 세계관을 구축하고 있다.

 

 

 

대만 아리산의 붉은 눈물, 녹슨 철길 위에 흐른다

위한 경유지가 아니다. 도시를 관통하는 낡은 철로부터 100년 된 목조 가옥, 시장 골목의 뜨거운 국물 한 그릇까지, 모든 것이 아리산이라는 거대한 산의 서문 역할을 한다.자이의 심장부에는 아리산의 원시림을 수탈하기 위해 일제가 건설한 삼림 철도의 흔적이 선명하다. 차고지에 멈춰 선 붉은 증기기관차와 녹슨 선로는 낭만적인 풍경 이면에 아픈 역사의 상처를 품고 있다. 천 년 수령의 편백과 삼나무를 베어 나르던 이 길은, 숲의 눈물이 흐르던 통로이자 근대화의 동력이었던 이중적인 역사를 증언한다.일제강점기 벌목 노동자들이 머물던 관사 단지는 이제 '히노키 빌리지'라는 이름의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낡고 불편한 과거를 지우는 대신, 보수하고 다듬어 현재와 공존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삐걱거리는 마루를 밟으며 편백 향기 가득한 거리를 걷다 보면, 상처를 미화하지 않고 정직하게 마주하려는 도시의 성숙한 태도를 엿볼 수 있다.도시의 묵직한 역사는 사람의 온기로 채워진다. 60년 넘게 한자리를 지켜온 '린총밍' 식당의 뜨거운 어탕(魚湯) 한 그릇은 자이의 따뜻한 심장과도 같다. 커다란 솥에서 끓어오르는 뽀얀 국물과 왁자지껄한 시장의 활기는 고단한 삶을 위로하는 맛이다. 투박하지만 깊은 감칠맛이 밴 국물은 낯선 여행자의 경계심마저 녹여버린다.자이의 여정은 결국 산으로 향한다. 이번에는 삼림열차 대신 차를 몰아 해발 1,000미터가 넘는 중산간으로 향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오를수록 공기는 서늘해지고, 산허리를 감싼 안개는 풍경에 깊이를 더한다. 그리고 마침내 마주한 아리산의 다원은 이 산이 품고 있는 또 다른 정수를 드러낸다.혹독한 일교차와 짙은 안개를 견디며 농축된 향을 품은 아리산 우롱차. 찻잔에 피어오르는 화사한 꽃향기와 뒤이어 밀려오는 부드러운 단맛은 단순한 미각적 경험을 넘어선다. 그것은 장엄한 산의 풍경을 입안에 머금는 것과 같은 고요한 의식이며, 이 도시와 산이 들려주는 긴 이야기의 마지막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