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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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 플레트네프가 빚은 라흐마니노프, 대구 상륙

 대구콘서트하우스가 자랑하는 기획 공연 '명연주시리즈'가 오는 6월 9일, 세계 클래식 음악계의 거성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이번 무대의 주인공은 러시아 출신의 다재다능한 음악가 미하일 플레트네프와 그가 이끄는 라흐마니노프 인터네셔널 오케스트라다. 여기에 프랑스 첼로의 거장 고티에 카퓌송이 협연자로 가세해 대구 관객들에게 잊지 못할 밤을 선사할 예정이다. 이번 공연은 단순한 내한 무대를 넘어, 한국 투어 중 오직 대구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특별한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어 전국적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지휘봉을 잡는 미하일 플레트네프는 피아니스트, 지휘자, 작곡가로서 모두 정점에 오른 인물이다. 그는 자신이 평생 존경해온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의 예술적 유산을 계승하기 위해 2022년 라흐마니노프 인터네셔널 오케스트라를 창단했다. 세계 각국의 최정상급 연주자들이 의기투합한 이 단체는 라흐마니노프 음악에 대한 깊이 있는 해석과 완벽한 앙상블로 창단 직후부터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왔다. 플레트네프는 이번 대구 무대를 통해 라흐마니노프의 정신이 현대에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 직접 증명해 보일 계획이다.

 


협연자로 나서는 고티에 카퓌송은 섬세한 표현력과 깊은 울림을 가진 음색으로 전 세계 음악 팬들을 매료시켜온 첼리스트다. 세계 유수의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독보적인 위치를 점해온 그에게 이번 무대는 대구 관객과 처음 만나는 공식적인 자리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카퓌송은 이번 공연에서 생상스의 '첼로 협주곡 제1번'을 연주한다. 이 곡은 이번 한국 투어 일정 중 대구 공연에서만 유일하게 연주되는 특별 레퍼토리로, 대구 관객들만을 위한 카퓌송의 특별한 선물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연 1부는 생상스의 작품들로 채워진다. 죽음의 무도라는 별칭으로 잘 알려진 교향시 '죽음의 무도'로 화려하게 문을 연 뒤, 카퓌송의 협연으로 첼로 협주곡 제1번이 이어진다. 생상스 특유의 화려한 기교와 서정적인 멜로디가 카퓌송의 첼로 선율을 통해 어떻게 구현될지가 관전 포인트다. 대구에서만 들을 수 있다는 희소성 덕분에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벌써부터 1부 무대에 대한 기대감이 최고조에 달해 있다.

 


2부에서는 이번 공연의 핵심이자 하이라이트인 라흐마니노프와 플레트네프의 음악적 대화가 펼쳐진다. 라흐마니노프의 초기 걸작인 교향시 '바위'에 이어, 플레트네프가 직접 작곡한 '라흐마니아나'가 한국 초연으로 연주된다. 총 8개의 모음곡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플레트네프가 라흐마니노프의 음악 세계에서 얻은 영감을 현대적인 어법으로 풀어낸 헌사다. 작곡가이자 지휘자인 플레트네프가 직접 지휘하는 자신의 작품을 한국에서 처음으로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번 공연의 가치는 충분하다.

 

대구콘서트하우스는 이번 공연을 통해 지역 관객들에게 세계 최고 수준의 음악적 경험을 제공하고 대구의 문화적 위상을 한층 높이겠다는 포부다. 거장들의 숨결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는 그랜드홀의 음향 시설과 플레트네프 오케스트라의 정교한 연주가 만나 빚어낼 시너지는 상상 그 이상일 것으로 기대된다. 한국 초연과 대구 단독 레퍼토리라는 파격적인 구성으로 무장한 이번 명연주시리즈는 6월의 밤을 화려한 클래식 선율로 수놓으며 관객들에게 깊은 감동을 남길 것이다.

 

 

 

남원 옛길 탐방, 춘향의 눈물과 오수개 충절을 걷다

던 주요 통로로, 소설 춘향전 속 이몽룡과 춘향이 이별의 눈물을 쏟았던 ‘오리정’이 그 출발점이다. 고을 경계에서 손님을 배웅하던 오리정 인근에는 춘향의 슬픔이 서린 ‘눈물방죽’과, 떠나는 임을 조금이라도 더 보려 버선발로 뛰어갔다는 ‘버선밭’ 지명이 전해진다. 비록 도로 확장과 직선화 공사로 인해 옛 풍경은 많이 변했지만, 길가에 홀로 선 표지석들은 이곳이 단순한 아스팔트 도로가 아닌 역사적 서사의 공간임을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오리정을 지나 북서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노거수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 대말방죽에 닿는다. 이곳은 조선시대 ‘반보기’ 풍습이 행해지던 애틋한 만남의 장소였다. 추석 직후 시집간 딸과 친정어머니가 중간 지점에서 만나 회포를 풀던 이 숲은, 모녀들의 눈물과 웃음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던 소통의 광장이었다. 현재는 방죽 수면을 마름이 뒤덮고 멸종위기종인 가시연이 힘겹게 싹을 틔우는 한적한 저수지로 변모했으나, 여전히 그 제방과 숲에는 수백 년 전 여인들이 나누었던 따뜻한 온기가 서려 있다.길은 다시 오수천변의 망북정으로 이어진다. 깎아지른 바위 위에 우뚝 솟은 망북정은 18세기 관리들이 북녘 한양의 임금을 향해 절을 올리며 충절을 다짐하던 곳이다. 바위에 선명하게 새겨진 ‘망북정’ 암각서는 당시 지식인들이 공유했던 충의의 가치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정자에서 내려다보이는 오수천 건너편은 우리에게 친숙한 ‘오수개 설화’의 실제 발생지로 추정되는 상리 천변이다. 흔히 원동산의 동상으로만 기억되는 오수개의 이야기는 사실 이 차가운 물줄기 옆에서 주인을 구하고 숨진 충직한 짐승의 실화에서 비롯되었다.과거 오수역참은 고을 관아와 맞먹는 규모를 자랑하던 국가 교통의 핵심 요충지였다. 고려와 조선 시대를 관통하며 천 년의 세월 동안 통신과 운송을 담당했던 이곳에는 이제 한 그루의 은행나무 노거수만이 남아 역사의 부침을 지켜보고 있다. 500년 전 한 선비가 읊었던 시구에는 역 앞에 실재했던 ‘개 묻은 나무(獒樹)’에 대한 기록이 생생히 남아 있어, 설화 속 이야기가 단순한 허구가 아닌 지역민들의 삶 속에 깊이 뿌리박힌 역사적 사실임을 뒷받침한다. 임금을 그리워하는 나그네의 시름과 개의 충절이 한 공간에서 공명하고 있었던 셈이다.탐방의 종착지인 원동산에는 오수개의 넋을 기리는 의견비각과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일제강점기 철교 공사 중 발굴된 의견비는 우여곡절 끝에 이곳으로 옮겨져 3.1 만세운동의 함성이 울려 퍼졌던 장터 한복판을 지키고 있다. 조형물 주위에 새겨진 부조 속 오수개는 불길 속에서 주인을 구하기 위해 온몸을 던지는 긴박한 순간을 보여준다. 이는 충의라는 거창한 명분을 넘어, 끝까지 곁을 지키는 존재로서의 다정함과 헌신이 무엇인지를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조용히 되묻는다.춘향의 이별로 시작해 오수개의 희생으로 마무리되는 이 옛길은 서로 다른 시대의 기억들이 오수천을 사이에 두고 겹쳐지는 거대한 박물관과 같다. 직선화된 국도 옆으로 잊혀가는 지명들과 잡초 무성한 옛터들은 우리가 보존해야 할 소중한 문화 자산이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오갔던 이 길은 지금도 설화와 풍경, 그리고 오래된 기억을 품은 채 묵묵히 흐르고 있다. 역사의 흔적을 찾아 걷는 이 길 위에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고, 잊혔던 가치들이 다시 살아나는 특별한 경험을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