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ulture

키아프 25주년, 정구호 손잡고 대변신

 올해로 25주년을 맞이한 '키아프 서울 2026'이 단순한 작품 판매의 장을 넘어 관람객의 경험을 극대화하는 새로운 형태의 아트페어로 탈바꿈한다. 한국화랑협회는 지난 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번 행사의 핵심 승부수로 '관람 경험의 재설계'를 꼽으며, 키아프 역사상 최초로 외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체제를 도입했다고 발표했다. 이번 프로젝트의 지휘봉은 패션 브랜드 '구호'의 설립자이자 공간 연출 전문가인 정구호 디렉터가 잡았다. 그는 전시장 동선부터 공간 브랜딩, 특별전 기획까지 총괄하며 관람객이 전시장 안에서 느끼는 감각적 흐름을 완전히 새롭게 디자인할 예정이다.

 

오는 9월 2일부터 6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되는 이번 페어에는 전 세계 18개국을 대표하는 175개 갤러리가 참여해 동시대 미술의 정수를 선보인다. 갤러리현대, 국제갤러리, 학고재 등 국내 미술 시장을 이끌어온 주요 화랑들은 물론, 미국 뉴욕의 니노 미에 갤러리와 영국 런던의 제이디 말랏 등 해외 유수 갤러리 15곳이 처음으로 한국 땅을 밟는다. 특히 올해는 신규 참여 갤러리가 20곳에 달해, 기존의 명성에 신선한 감각을 더한 다채로운 라인업이 완성되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신진 작가들의 등용문인 '키아프 플러스'와 작가 1인을 집중 조명하는 '솔로 부스' 프로그램도 내실을 기했다. 올해 키아프 플러스에는 국내외 19개 갤러리가 참여해 실험적인 현대 미술의 흐름을 소개하며, 솔로 부스에서는 김남표, 김서울 등 15명의 작가가 각 갤러리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펼쳐 보인다. 이러한 집중 조명 방식은 관람객들이 작가의 예술적 철학을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장치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작가 지원 프로그램인 '키아프 하이라이트' 역시 운영 방식에 변화를 주었다. 세미파이널에 오른 고사리, 지근욱, 매튜 스톤 등 10인의 작가들은 올해 처음 시도되는 '인 부스' 방식을 통해 관객과 만난다. 이는 갤러리 부스 내부에 별도의 전시 공간을 마련해 선정 작가의 작품을 더욱 몰입감 있게 보여주는 형태로, 작가와 갤러리 간의 유기적인 협력을 강조한 것이 특징이다. 이러한 시도는 키아프가 단순한 중개 플랫폼을 넘어 작가 육성의 산실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번 행사는 세계적인 아트페어인 '프리즈 서울'과 같은 기간, 같은 장소에서 열려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전망이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관하는 '대한민국 미술축제' 및 서울아트위크와 연계되어 한남, 청담, 삼청동 등 서울 전역이 미술의 열기로 가득 찰 예정이다. 특히 관람객 분산을 위해 오후 3시를 기점으로 입장권을 세분화하고, 프리즈와의 통합 입장권을 한정 수량으로 할인 판매하는 등 운영 측면에서도 관람객의 편의를 최우선으로 고려했다.

 

이성훈 키아프 운영위원장은 이번 25주년 행사가 한국 미술 시장의 국제적 위상을 확인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구호 디렉터의 감각적인 연출과 전 세계 화랑들의 수준 높은 작품들이 어우러진 이번 페어는, 관람객들에게 미술을 감상하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9월의 서울은 이제 단순한 도시를 넘어 전 세계 미술 애호가들이 집결하는 거대한 캔버스로 변모할 준비를 마쳤다.

 

유네스코 타이틀, 주민에겐 생존권 족쇄?

최근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유네스코의 엄격한 보존 지침이 오히려 지역의 현대화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작용하거나, 감당하기 힘든 수준의 관광객이 몰려들며 원주민의 일상을 파괴하는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의 영광을 뒤로하고 스스로 유산 지위를 내려놓겠다는 지역들이 하나둘 등장하며 국제 사회에 충격을 주고 있다.슬로바키아의 산간 마을 블콜리네츠는 이러한 갈등의 최전선에 서 있다. 1993년 중세 오두막의 원형을 간직했다는 이유로 세계유산에 이름을 올렸지만, 정작 이곳에 거주하는 20여 명의 주민에게 등재는 재앙에 가까웠다. 매년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좁은 마을을 점령하면서 사생활 침해와 소음 문제가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참다못한 주민들은 박제된 유산이 아닌 인간다운 삶을 살 권리를 주장하며 공식적인 등재 해제를 요구하고 나섰다. 국제기구의 규제가 주민들에게는 생존을 위협하는 족쇄가 된 셈이다.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응고롱고로 자연보존지역 역시 보존과 생존권이 충돌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유네스코의 유산 관리 정책이 강화되면서 이곳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마사이족 주민들이 삶의 터전인 목초지에서 쫓겨나는 상황이 발생했다. 마사이 국제연대동맹은 원주민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차라리 세계유산 목록에서 이 지역을 제외해달라고 강력히 촉구하고 있다. 보존이라는 명목하에 자행되는 강제 이주가 인권 침해 논란으로 번지며 유네스코의 보존 철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이미 유네스코와의 정면충돌 끝에 지위를 박탈당한 사례들도 존재한다. 독일의 드레스덴 엘베 계곡은 2009년 세계유산 목록에서 강제 삭제됐다. 극심한 교통난을 해결하기 위해 현대식 다리 건설을 추진하자 유네스코가 경관 훼손을 이유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투표를 통해 유네스코 타이틀 대신 출퇴근의 편리함과 지역 발전을 선택했다. 이는 국제기구의 보존 권고보다 지역 공동체의 실질적인 필요가 우선시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으로 기록됐다.영국의 리버풀 해상 무역 도시 또한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리버풀시는 쇠락한 항구 지역을 재개발해 경제 활력을 찾으려 했으나, 유네스코는 역사적 가치 훼손을 이유로 사업 철회를 압박했다. 결국 리버풀은 2021년 세계유산 지위를 잃었지만, 당시 시장은 유네스코가 도시를 불모지로 남겨두려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흥미로운 점은 지위 박탈 이후에도 이들 지역의 관광객 수는 줄어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는 세계유산 타이틀이 없어도 지역의 매력만 충분하다면 관광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문화재 전문가들은 이제 유네스코가 일방적인 보존만을 강요하던 과거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유적지가 박물관의 전시품이 아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터전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주민의 생활 편의와 경제적 자립을 고려한 유연하고 영리한 보존 계획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세계유산 반납 행렬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현재와 과거가 공존할 수 있는 새로운 상생 모델을 찾는 것이 전 세계 유적지들이 마주한 시급한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