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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상블서 주연으로"…배형빈의 10년 뚝심

 화려한 스타라는 수식어보다 ‘무대를 지키는 배우’라는 본질에 집중하며 10년을 버텨온 한 청년의 뚝심이 결실을 보고 있다. 2016년 창작뮤지컬로 데뷔한 이후 연극과 뮤지컬, 드라마를 오가며 내실을 다져온 배우 배형빈이 그 주인공이다. 그는 최근 뮤지컬 ‘명성황후’ 30주년 공연과 ‘몽유도원’에서 앙상블로 활약하며 대극장 무대 경험을 쌓은 데 이어, 오는 15일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개막하는 연극 ‘갈매기 날다’를 통해 생애 첫 중극장 주연이라는 중책을 맡게 되었다. 앙상블에서 주연으로 거듭난 그의 성장은 요행을 바라지 않고 기본기를 닦아온 성실함의 결과로 평가받는다.

 

배형빈의 연기 인생은 중학교 시절 우연히 접한 뮤지컬반 수업에서 시작되었다. 아이돌을 꿈꾸던 소년은 노래와 춤, 연기가 어우러진 무대의 매력에 매료되어 홀로 연기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입시 위주의 학원 교육 대신 전통 있는 고교 연극부를 선택한 그는 그곳에서 한국무용과 난타, 탈춤, 기계체조 등 배우가 갖춰야 할 다양한 신체 훈련을 몸소 익혔다. 1학년 때 이미 전국연극제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으며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그는 기술적인 화려함보다 무대를 대하는 경건한 태도를 배우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가 10년의 여정 동안 가장 소중하게 지켜온 가치는 ‘좋은 배우 이전에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철학이다. 배형빈은 연습실 바닥을 직접 닦으며 무대를 신성하게 대하는 법을 익혔고, 일상에서의 바른 자세와 습관이 무대 위 자연스러운 연기로 이어진다는 믿음을 실천해 왔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직업인만큼, 자신의 삶부터 성실하게 꾸려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이러한 단단한 내면은 플랫폼의 다변화로 배우라는 직업을 가볍게 생각하기 쉬운 요즘 시대에 동료와 스태프들에게 깊은 신뢰를 주는 요소가 되고 있다.

 

물론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불안함과 조급함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또래 배우들이 먼저 성공 가도에 오르는 모습을 보며 슬럼프를 겪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그를 붙잡아준 것은 선배들의 따뜻한 조언이었다. 특히 고(故) 이순재 배우 등 대선배들로부터 무대를 절대 놓지 말라는 격려를 받으며 그는 자신만의 속도로 걷는 법을 배웠다. 남들과 비교하기보다 어떠한 시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무대 위에 서 있겠다는 그의 다짐은, 앙상블이라는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온 그의 필모그래피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배형빈이 추구하는 지향점은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는 ‘전문 배우’다. 그는 연극에서 얻는 에너지가 매체 연기에서도 강력한 자산이 된다고 믿으며, 무대와 스크린을 자유롭게 오가는 배우가 되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과거 전통예술을 익혔던 시간들이 지금은 그만의 독보적인 경쟁력이 되어 대극장 무대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거창한 수식어 대신 ‘그저 배우(Just Actor)’라고 불리고 싶다는 그의 소망에는 무대에 대한 무한한 존경과 예술가로서의 책임감이 오롯이 담겨 있다.

 

이제 배형빈은 조연의 자리를 넘어 한 작품을 이끌어가는 주역으로서 관객 앞에 선다. 오는 15일부터 18일까지 국립극장에서 열리는 연극 ‘갈매기 날다’에 이어, 9월에는 대학로에서 창작뮤지컬 ‘충분한 이별’로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앙상블 배우로서 묵묵히 무대 뒷자리를 지켰던 시간은 이제 그가 무대 중심에서 뿜어낼 에너지의 원천이 되었다. 10년의 기다림 끝에 찾아온 이번 주연 무대는 배우 배형빈이 그토록 원했던 ‘진짜 배우’로 거듭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폭염 뚫고 피어난 고결함…밀양 배롱나무 기행

축물들과 어우러져 거대한 수묵채색화를 완성하기 때문이다. 예부터 고결한 선비의 기상을 상징하며 서원과 정자 곳곳에 심겼던 배롱나무는 이제 밀양의 여름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 푸른 밀양강 줄기를 따라 굽어보는 고즈넉한 누각과 낡은 돌담 너머로 번지는 분홍빛 꽃물결은 지친 일상을 잠시 잊게 만드는 마법 같은 풍경을 선사한다.밀양 배롱나무 기행의 첫 관문은 재약산의 정기를 품은 천년고찰 표충사다. 사명대사의 호국 정신이 깃든 이곳은 여름이 되면 경내 전체가 선홍빛으로 물들며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특히 대광전 앞마당의 삼층석탑 뒤로 병풍처럼 펼쳐진 배롱나무 군락은 사찰 특유의 적막함과 대비되어 더욱 선명한 색채를 뽐낸다. 오래된 기와지붕 위로 늘어진 분홍색 꽃가지는 재약산의 짙푸른 녹음과 조화를 이루며, 보는 이로 하여금 실존적 평온함을 느끼게 한다.도심으로 발길을 옮기면 270년의 세월을 간직한 혜산서원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1753년 조선 전기 학자 손조서를 기리기 위해 세워진 이곳은 서원 철폐령의 아픔을 딛고 복원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혜산서원의 마당을 지키는 배롱나무는 서원의 굴곡진 역사와 닮아 시련 속에서도 변함없이 붉은 꽃을 피워낸다. 특히 이곳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하얀 배롱나무 꽃도 만날 수 있어 더욱 특별하다. 휘어진 소나무와 붉은 꽃이 기와 담장을 수놓는 풍경은 조선 시대 선비들이 거닐던 학문의 길을 상기시킨다.선비의 풍류가 깃든 오연정과 월연정은 자연과 건축이 하나로 녹아든 밀양 배롱나무 여행의 정점이다. 밀양강이 유유히 흐르는 절벽 위에 세워진 오연정은 정자에 오르는 순간 강물과 산줄기, 그리고 붉은 꽃가지가 어우러진 절경을 선사한다. 인근의 월연정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근대 문화유산인 연월터널이 있어 산책의 묘미를 더한다. 계곡을 사이에 두고 지어진 월연정과 쌍경당은 물과 달이 맑게 비치는 절경 속에 배롱나무꽃이 더해져 한국 전통 정원의 극치를 보여준다.여름날의 뜨거운 순례를 마무리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는 교동에 위치한 밀양향교다. 조선 시대 지방 교육기관이었던 향교의 명륜당과 대성전 앞마당에는 정숙한 기품을 간직한 배롱나무들이 굳건히 서 있다. 학문에 정진하던 공간답게 이곳의 꽃들은 화려함보다는 절제된 미학을 보여주며, 하얀 창호지 문 너머로 살포시 고개를 내민 꽃가지는 여백의 미를 완성한다. 향교 내 작은 도서관에서 잠시 땀을 식히며 바라보는 분홍빛 풍경은 여름의 고단함을 씻어내기에 충분하다.배롱나무는 7월 중순부터 피기 시작해 8월 초순에 그 화려함이 절정에 달한다. 한 번에 지지 않고 새로운 꽃이 계속 피어나는 특성 덕분에 8월 내내 아름다움을 유지하지만, 가장 싱그러운 상태를 보려면 지금이 적기다. 사진 촬영을 계획한다면 부드러운 빛이 스며드는 아침이나 늦은 오후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 붉은 색감을 온전히 담아내는 비결이다. 무더위 속 도보 이동이 많은 만큼 시원한 생수와 편안한 신발을 준비해 밀양의 붉은 꽃길을 따라 걷는 여행은 올여름 가장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