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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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중박 첫 식문화전, 우리들의 밥상은 인문학이다

 한국인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밥상이 박물관의 거대한 전시실 안으로 들어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야심 차게 준비한 특별전 '우리들의 밥상'은 단순한 음식의 나열이 아닌, 선사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이 무엇을 어떻게 먹으며 삶을 이어왔는지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12일 열린 강연회에서 이번 전시를 기획한 이진민 학예연구관은 밥상을 하나의 종합적인 예술이자 삶의 궤적으로 정의하며, 관람객들이 각자의 기억을 투영할 수 있는 풍성한 한상차림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국립중앙박물관 역사상 처음으로 식문화를 단독 주제로 삼아 종합적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남다르다. 전 세계적으로 K-푸드에 대한 관심이 뜨거운 시점에, 음식 뒤에 숨겨진 노동과 지혜, 그리고 계절의 흐름을 유물 684점을 통해 증명해 보인다. 보물 5건과 국가등록문화유산 2건을 포함해 51개 기관에서 모인 방대한 자료들은 밥 한 끼에 담긴 묵직한 역사적 무게를 실감하게 한다.

 


전시의 도입부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친숙한 안부 인사인 "식사하셨어요?"라는 문구로 시작된다. 기획 단계에서 가장 공을 들인 이 지점은 관람객의 일상과 박물관의 유물을 연결하는 심리적 통로 역할을 한다. 1부 '삶과 함께한 우리 밥상'에서는 쌀을 중심으로 한 농경 문화의 시작과 고구려 벽화 속 식사 장면을 현대적 영상으로 재해석하여 보여준다. 특히 1,700년 전의 도마와 현대의 도마를 나란히 배치해 시공간을 초월한 식문화의 연속성을 강조한 대목이 눈길을 끈다.

 

학문적 경계를 허물고 삶의 맥락을 복원하려 노력한 흔적은 전시장 곳곳에서 발견된다. 고고학이나 역사학의 엄격한 시대 구분을 따르는 대신, 임금의 수라상에서도 팔도진미의 화려함보다 백성을 긍휼히 여겼던 통치자의 마음을 읽어내는 식이다. 이는 식문화가 단순히 먹는 행위에 그치지 않고, 공동체의 결속과 배려라는 사회적 가치를 담고 있음을 시사한다. 관람객들은 유물을 통해 과거 사람들의 식사 풍경을 상상하며 자연스럽게 전시에 몰입하게 된다.

 


2부 '자연이 빚은 우리 밥상'은 식재료의 저장과 가공 방식에 초점을 맞춰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탐구한다. 봄나물과 해산물 등 계절마다 대지가 내어준 선물들을 어떻게 발효시키고 조리했는지에 대한 과정이 그래픽과 조리 영상, 문학 작품과 어우러져 펼쳐진다. 옹기와 조미료 등 식탁의 조연이었던 도구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자연의 섭리를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며 발전해 온 한국 식문화의 기술적 독창성을 세밀하게 분석한다.

 

전시의 끝자락에는 실제 음식이 놓여 있지 않지만, 관람객들은 마음속으로 자신만의 밥상을 차려보게 된다. 시대에 따라 밥상을 대하는 태도는 변해왔지만, 그 속에 담긴 생존과 관계의 본질은 변하지 않았음을 전시는 묵묵히 웅변한다. 51개 기관의 협력으로 완성된 이 거대한 식문화의 기록은 오는 10월 25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관람객들을 맞이하며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역사를 다시 쓰게 한다.

 

부산 밀면의 시초 내호냉면, 100년 역사의 향기

동 소막마을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 깃든 상징적인 장소다. 일제강점기 한우를 수탈해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지어졌던 거대한 소 막사들은 전쟁이 터지자 갈 곳 없는 피란민들의 보금자리가 되었다. 짐승이 머물던 축사에 사람이 들어가 다락방을 만들고 삶을 이어갔던 이 독특한 주거 형태는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비극적 역사의 산물이다.소막마을의 좁은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면 부산의 대표 음식인 밀면의 탄생 비화와 마주하게 된다. 함경남도 흥남에서 피란 내려온 일가가 1919년부터 이어온 냉면의 전통을 부산에서 다시 꽃피운 것이 그 시작이다. 전쟁 직후 메밀을 구하기 힘들었던 시절, 구호 물자로 받은 밀가루를 냉면 제조 방식에 접목해 탄생한 것이 바로 부산 밀면이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이 노포는 단순한 음식점을 넘어 척박한 피란 살이 속에서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던 실향민들의 슬픔을 달래주던 안식처였다.피란민들의 또 다른 눈물이 서린 곳은 영도다리라고 불리는 영도대교다. 1934년 준공된 국내 최초의 연륙교이자 도개교인 이곳은 헤어진 가족을 찾으려는 이산가족들이 매일같이 모여들던 만남의 광장이었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피란민들은 "살아있다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는 약속 하나로 모진 세월을 견뎠다. 다리의 한쪽 끝이 하늘을 향해 들리는 생경한 풍경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재회를 향한 희망의 상징이었으며, 수많은 대중가요의 소재가 되어 피란민들의 고달픈 삶을 대변했다.영도다리는 원래 피란수도 유산 목록에 없었으나 그 역사적 상징성을 인정받아 최근 추가로 등재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과거 하루에 많게는 일곱 번씩 배가 지나갈 때마다 다리를 들어 올렸던 도개 행사는 1960년대에 중단되었다가 2013년에 이르러서야 재개되었다. 현재는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만 다리가 올라가는 장관을 볼 수 있어, 이를 보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든 관광객들로 다리 주변은 매주 장인인산해를 이룬다. 다리가 들리는 짧은 시간 동안 사람들은 70여 년 전 이곳에서 가족을 기다리던 이들의 간절함을 되새긴다.부산의 산복도로와 항구 주변에 흩어진 이 유산들은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인류의 회복력을 보여준다. 소 막사를 집으로 개조하고 밀가루로 냉면을 만들어 먹으며 이산가족을 기다리던 그 시절의 기록은 이제 인류 공통의 유산으로 보존될 준비를 하고 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의 현지 실사가 진행 중인 가운데, 부산시는 이들 유산이 지닌 역사적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 소막마을의 원형 복원과 영도다리 주변의 역사 공원 조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피란수도 부산의 1,023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가장 어두웠던 시기인 동시에 가장 강인했던 시간이었다. 소막마을의 밀면 향기와 영도다리의 도개 소리는 세대를 넘어 오늘날 우리에게 역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세계유산 등재 추진은 단순히 과거를 기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전쟁의 상처를 딛고 일어선 한국인의 생명력을 세계에 증명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부산의 골목마다 스며있는 피란 시절의 기억은 이제 평화를 염원하는 전 세계인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될 준비를 마쳤다.